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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우산성에서 나온 벼루편과 관 명문와의 의미

  • 등록일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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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충남 청양군 우산성이 백제시대는 물론 통일신라시대에도 매우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 주장이 제기됐다.

 

백제역사문화연구원(대표이사 이종관) 오효성 연구원은 지난 22일 공주시 소재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장기승)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회 백제학 연구 교류 학술세미나'에서 '청양 우산성 북문지 일대 발굴조사'를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한성백제박물관(관장 김지연) 등과 공동으로 마련한 것으로, 주제는 '발굴조사를 통해 본 새로운 고고학적 성과의 검토와 전망'이었다.

 

오 연구원에 따르면 우산성에 대한 1차 발굴조사는 지난 2023년 10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진행됐다.

 

우산성은 4개의 산봉을 에워싸면서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며 전체 성벽이 석축으로 이루어진 석성에 해당한다. 성벽 둘레는 1081m다.

 

 

우산성은 백제 때 축성된 관방유적으로 1989년 12월 29일 충남도 기념물로 지정됐으며, 2003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의 기초 학술조사를 통해 백제 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및 문지 3개소, 저수시설과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청양군은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체계적인 문화유산 발굴조사 및 유적 정비계획을 포함한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했으며, 연차별 계획에 따라 필요성이 제기된 우산성 북문지 일대 1500㎡를 중심으로 한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우산성 북문지 일원 성벽은 백제 때 처음 축조돼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총 5차례 이상의 수·개축 과정을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성내 평탄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기와 주거지 1기가 확인됐다.

 

 

백제역사문화연구원(대표이사 이종관) 오효성 연구원은 지난 22일 공주시 소재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장기승)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회 백제학 연구 교류 학술세미나'에서 '청양 우산성 북문지 일대 발굴조사'를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그동안 추정만 되어 왔던 백제 때 처음 쌓았던 성벽을 확인했다는 점과, 성내 평탄면에서 백제 사비도성 관련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형태의 벼루편이 출토돼 당시 문서 행정과 관련한 기능의 공간 존재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는 분석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PDF 파일 캡쳐)

그동안 추정만 되어 왔던 백제 때 처음 쌓았던 성벽을 확인했다는 점과, 성내 평탄면에서 백제 사비도성 관련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형태의 벼루편이 출토돼 당시 문서 행정과 관련한 기능의 공간 존재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는 분석이다.

 

조사대상지의 토층 퇴적 양상을 층군별로 살펴보면 흑갈색조 사질점토가 주를 이루고 있는 Ⅰ층군에서는 비닐이나 생활쓰레기 등이 발견됐으며, Ⅱ층군에서는 조선시대 유물이 포함된 층이 확인됐다.

 

Ⅲ층군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층으로, 상부 생활면에서는 건물지가 하부 생활면에서는 수혈주거지 1동이 확인됐다.

 

성벽은 초축 이후 지속적인 보수과정을 거치며 사용됐는데, 무너진 성벽을 제거하고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을 백제때도 한 차례 이상 거쳤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사비기 핵심 도성시설로 알려진 ▲부여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 등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형태의 벼루편이 발견됐다.

 

아울러 주거지 내부에서는 뚜껑과 완 등이 출토됐으며 외부에서 유입된 통일신라시대 기와와 함께 '관(官)' 명문와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울러 주거지 내부에서는 뚜껑과 완 등이 출토됐으며 외부에서 유입된 통일신라시대 기와와 함께 '관(官)' 명문와가 발견되기도 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PDF 파일 캡쳐)

오 연구원은 결론 부분에서 "우산성 북문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조선시대에 이르는 성벽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며 "특히 초축 성벽의 축조기법은 사비도성의 외곽성에 해당하는 부여 나성뿐만 아니라 사비기 지방성에 해당하는 고흥 백치성 등에서도 확인되는 백제 고유의 축성 기술 요소를 볼 수 있어 그동안 추정에만 그쳐왔던 백제 초축 성벽의 존재를 명확하게 확인했음이 가장 큰 의의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연구원은 또 "백제 사비도성 관련 핵심 유적에서 주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백제 벼루편이 출토된 점은 사비기 지방 문서행정과 관련된 시설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해 줌으로써, 백제 때 우산성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며 "통일신라 관(官) 명문와는 주요 관청과 사찰 중심으로 출토 사례를 보이고 있는데, 백제 멸망 이후 신라에서 설치한 10정 중 고량부리정과 관련한 주요 시설물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어, 우산성은 백제 이후에도 중요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곳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양군은 1차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2차 발굴조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지난해 7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우산성은 그동안 성벽 쌓기 방법을 확인하지 못해 백제 산성으로 추정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발굴조사를 기점으로 백제 때 산성임이 분명해졌다"며 "1차 발굴조사와 연계한 2차 발굴조사가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예산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